기획의 글
불은 붙었고
최윤희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세 명의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탐구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들여다봄으로써, 외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신체이자 외부로부터 훼손된 장소로서, 자신의 몸으로 시선이 향한다. 그렇게 자신의 안팎을 탐색하고 관찰하며 작업을 진행해 나간다.
박희민은 사회가 원하는 모습의 외형 또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갉아 넣었던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로부터 출발한다. 벌어진 상처에서 자라난 포자들은 제멋대로 부풀어 오르더니 연약한 비닐을 찢고 나와 그대로 방치된 채 굳는다. 그렇게 생성된 덩어리들은 심장, 발, 다리 같은 신체의 모습을 띠는데, 그것은 얼핏 불에 타거나 훼손된 주검을 연상케 한다. 전시장 곳곳에 놓여진 시커먼 조각들은, 자신을 균질한 것으로 다듬으려는 사회적 시선을 걷어낸 형태로서, 다분히 추상적이지만 여전히 인간의 동세를 반영하고 있다. 그렇게 그는 뜨겁게 녹아내린 내면의 모양들을 특정한 형태로 일으켜 세우거나, 눕히거나, 자리에 앉힌다.
오정민은 이번 신작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난소와 자궁의 질환을 일종의 자연현상처럼 바라보며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신체 내부의 풍경을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관찰하고 싶어 했다. 그의 작업 속에서 부피가 팽창된 신체 내부의 조직이나 소용돌이치는 ‘막’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껏 부풀어져 있지만 사실 지극히 연약한 조직들이다. 화면의 일부에 콜드 왁스를 덧바르며 붓질에 무게를 더한 결과, 연약했던 조직들이 그림 안에서 단단하게 서로 결집하기 시작한다. 한편 캔버스 앞에 마주 섰을 때 시야를 에워싸듯 크게 펼쳐지는 작가 특유의 스케일 감각은, 과장된 부피감 없이도 작가 내면의 크기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렇게 그는 이제 막 점화한, 불꽃이 일어나기 직전의 열기를 뿜어내려는 기세로 자신의 내부를 펼쳐 보인다.
성지윤이 다루는 PVC호스는 ‘관(Vessel)’의 알레고리이자, 신체 내부의 감각을 외부의 공간에서 사유하기 위한 물리적 매개체다. 작가는 ‘비우고 채우는(Digging–Filling)’ 행위를 거치며 자신의 제스처를 관에 담아 굳힌 후, 신체의 일부처럼 유기적인 형태로 구부리거나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는 최근 작업에서부터 호스 특유의 유기체성을 자신과 가족을 내밀하게 연결하는 장치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의 신작들과 연계된 미공개 영상 작업 ‹딕-플랜팅›(2025)에서, 작가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이해 받지 못한 정체성과 젠더, 해결할 수 없는 종교적 갈등을 인지하면서도, 아버지와 나무를 심으면서 나눈 일상적인 대화들을 통해 느슨하게나마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려 한다. 이후 그는 제주의 부모님 댁 앞마당에 깔린 흙을 비롯하여, 가족과 연고를 맺고 있는 물질들을 서울의 작업실로 가지고 돌아와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이처럼 사적인 기억을 매개하는 질료들을 호스 안에서 굳히는 작업 과정이란, 결국 끊어낼 수 없는 혈연과의 애증 관계 속에서 응어리진 마음을 물질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좁고 긴 통로 속에 채워 넣고 봉합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연약하게 흐르는 곡선을 유심히 살펴보면, 봉합된 물질이 오랜 시간 굳어지는 과정에서 형성된 지층 고유의 색이 느껴진다. 작가는 그렇게, 좁고 가느다란 통로 속에서 이미 자신만의 발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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